[허영섭 칼럼] 통계가 왜 ‘거짓말’ 소리를 듣는가

  • 등록 2018-08-31 오전 6:00:00

    수정 2018-08-31 오전 6:00:00

일찍이 통계의 왜곡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사람은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는 불평이 그것이다. 빅토리아 여왕 당시 총리를 지내면서 영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데 기여한 당사자의 한 명이면서도 정책 수행의 근거가 됐던 통계의 작위성에 대해서는 남다른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런 얘기가 떠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통계의 신뢰성 논란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놓고 청와대까지 나서서 경제 현실에 대한 공방이 펼쳐졌고, 결국 통계청장까지 전격 교체된 마당이다. 초점은 현재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방향이 올바르냐에 맞춰져 있다. 항간에서는 반발이 빗발치는 데도 정부는 그대로 밀고 나간다는 입장이다. 양측에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통계 숫자다. 어느 한쪽은 틀렸다고 간주하는 게 타당하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는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결과로 도출된 숫자를 해석하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따진다면, 처음 문제가 됐던 가계소득조사의 신뢰도를 논한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통계청장이 교체된 만큼 그 조사 방법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란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디즈레일리가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흥분했던 논쟁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지 않아도 통계의 허구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서적들도 수두룩하게 소개돼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간행된 ‘How to Lie with Statistics’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우리말로는 ‘통계로 거짓말 하는 방법’이라고 옮길 수 있을 법하다. 실제로 국내에도 ‘새빨간 거짓말, 통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통계의 마술’이라는 점잖은 제목의 또 다른 번역본도 나와 있지만 마술이라는 것이 눈속임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똑같은 의미다.

이처럼 부작용을 지적하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통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개인적인 의사결정에서부터 기업 차원의 투자나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계량화된 조사 근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통계 숫자다.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구성원들의 생각을 알려 준다. 특정 현안에 대한 여론이나 주변의 평판도 과학적인 집계 과정을 거친다면 통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통계 작업은 공정하고 정확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 현상을 진단하는 지표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처방이 차질을 빚을 뿐 아니라 결국 편파적인 목적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통계 작성자들이 조사 표본을 설정하면서 가급적 오차의 범위를 줄이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통계 결과에 신뢰를 불어넣을 수가 없다.

통계의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다른 통계에서 관련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 경제 현실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면 투자와 고용이 상승 곡선을 보일 것이고, 하향세라면 그 반대 현상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앞서의 가계소득조사나 경기선행지수, 수출실적 추이에서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어느 하나만 동떨어져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는 얘기다. 그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다면 해석이 엇갈릴 수도 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을 보면 결론을 내리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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