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의 IT세상읽기]오픈넷의 과도한 페이스북 편들기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자는 없다..이태원 살인 사건?
발신자 종량제가 표현의 자유 침해?..과도한 해석
글로벌 CP 두둔..인터넷 가치를 지키는 일인가?
  • 등록 2019-08-24 오전 7:13:11

    수정 2019-08-24 오전 7:23:21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사단법인 오픈넷이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1심 소송에서 승소하자 환영 논평을 냈습니다.

이번 재판 결과의 요지는 ‘정부가 콘텐츠 제공자에게 콘텐츠 접속의 품질 책임을 물으려다 실패한 케이스로 패소는 당연한 결과’라며 ‘콘텐츠 제공자에게 정보전달의 책임과 비용을 전가하려는 움직임은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에따라 오픈넷은 정부가 이번 소송의 결과를 고려해 ①실질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발신자종량제를 폐지하고 ②망이용료 가이드라인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픈넷 말대로 발신자종량제(과기정통부의 2016년 트래픽 기반 인터넷 접속제도 개정)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망이용료 가이드라인(방통위가 추진 중인 망 이용 가이드라인) 역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의지는 간 데 없고 통신사 이익만 보장해주기 위한 걸까요.

오픈넷의 주장이 과도하다고 생각됩니다.

①접속 지연이라는 이용자 피해는 페이스북의 행위(접속경로 변경)로 발생했는데 페이스북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점②발신자종량제에 표현의 자유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과도하다는 점 ③이번 재판 결과는 한국의 통신망을 공짜로 쓰려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자는 없다..이태원 살인 사건?

이 사건은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망 이용대가를 줄이려다 이용자에게 접속 지연 피해를 준 사건입니다.

방통위 사실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KT에 내는 망대가를 줄이려다 접속경로를 홍콩으로 바꿨고 이후 SK브로드밴드의 초고속인터넷을 쓰는 페이스북 이용자는 서비스 속도가 4.5배, LG유플러스 이용자는 2.4배 느려졌죠.

방통위가 이용자이익저해 혐의로 페이스북에 3억9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실제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고 피해를 야기한 주체가 바로 페이스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픈넷은 ‘KT의 압박 때문에 페이스북은 SK그룹/LGU+ 이용자들의 KT캐시서버에의 접근을 차단해 원래 접근루트로 페이스북에 접속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속도가 전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며, 페이스북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현행법상 콘텐츠 업체(페이스북)에게 접속 품질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과도하지만, 제재하려면 별도의 명문규정이 필요하다’는 재판부의 판단과도 온도 차가 납니다.

이 사건은 소비자 피해는 발생했지만 책임지는 곳은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태원 살인사건’과 비슷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의 효과는 통신사들이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트래픽이 급증하는데 망 증설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자와 최저 속도 보장 계약이 없다면 말이죠. 법원이 판결문에서 속도 지연이라는 이용자 피해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신자 종량제가 표현의 자유 침해?..과도한 해석


오픈넷은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2016년 1월부터 시행된 트래픽 기반 인터넷상호접속제도(IX)를 들고 있습니다. 과기정통부 고시인 이 제도는 과거 통신사간 트래픽량에 관계없이 상호접속료를 무정산하던 데에서 트래픽량에 따라 주고 받는 상호정산으로 바뀐 걸 의미합니다. 오픈넷이 말하는 발신자종량제라는 것이죠.

오픈넷은 ‘발신자종량제는 힘없는 개인들이 콘텐츠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의 힘을 마비시키는 제도’라며 ‘콘텐츠를 올리면 전 세계 누가 몇명이나 접근할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접속할 때마다 접속량에 대해 돈을 내야 한다면 누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치거나 자기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공유하려 하겠는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오해를 낳습니다. 오픈넷 말대로라면 미국에서의 구글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프랑스 오렌지(Orange), 독일 도이치텔레콤(DT), 미국 주요 통신사(ISP) 등에 망 대가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때 망 대가는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는 일방이 대가를 주는 페이드 피어링(Paid Peering) 방식이죠. 즉 트래픽 기반이라는 점에서 발신자 종량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구글이 미국에서는 트래픽 기반으로 통신사에 돈을 내고, 우리나라에서는 트래픽 처리비용을 통신사(ISP)에게 전가하는 게 문제아닐까요.

구글이 국내 통신사를 무시하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IX제도를 바꿔 트래픽 기반 기준으로 잡은 것은 힘센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나 힘 센 미국 통신사에게만 유리한 정글 같은 인터넷 사적 계약에 개입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글로벌 CP 두둔.. 인터넷 가치를 지키는 일인가?


오픈넷은 그간 인터넷실명제 반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범위 좁히는 법안 찬성 등 다원화된 민주주의 세상을 위한 다양한 공익 활동을 펴왔던 터라, 이번 환영 논평에 대한 실망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인터넷의 ‘가치’를 논하는 기관이 사업자 ‘이익’ 문제로 재판 결과에 과도한 해석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특히 이번 1심 소송 결과로 우리나라에서 수 조원의 매출을 벌면서도 세금이나 망 이용대가는 제대로 내지 않는 글로벌 콘텐츠 업체들이 유리해졌다는 점에서, 오픈넷의 입장은 답답한 마음마저 듭니다.

방통위가 망 이용 계약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던 이유는 구글이나 넷플릭스, 페이스북,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큰 콘텐츠 업체라면 이제는 자사 서비스에 대한 서비스 품질에 신경써야 한다는 취지때문입니다.

여기에 통신사에 망대가를 얼마 주라거나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저 성실히 협상하고, 큰 회사라면 서비스 품질도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미입니다. 방통위는 큰 콘텐츠 업체 외에 중소 스타트업에까지 품질 의무를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용자경험을 중시하는 인터넷 기업들이 이런 작은 의무까지 가이드라인에 담기는 걸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혹시 이번 페이스북 사태처럼, 통신사와 망대가 협상이 잘 안 되면 맘대로 접속경로를 돌려 국내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줘도 된다는 취지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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