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서 엄마 손 놓쳐"…58년 만에 만난 여동생들, DNA가 '은인'

1965년 3월 헤어진 '4남매' 상봉…'오열'
보호시설서 임의로 이름·생일 사용해 난관
DNA 두 차례 채취 끝에 실종자 찾아
"'엄마' 불러보는게 소원…못 봬서 슬퍼"
  • 등록 2023-01-31 오후 5:20:57

    수정 2023-01-31 오후 7:39:28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어릴 때 모습 그대로 있네, 얼마나 고생했을까, 우리도 편하게 지내진 않았어…미안합니다.”

58년 전 잃어버린 두 여동생의 얼굴을 마주한 큰언니 장희재(68)씨와 둘째 장택훈(66)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잃어버린 형제들을 만날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서로 팔짱을 낀 채 서울 동작경찰서 회의실로 들어온 장희란(64)씨와 장경인(62)씨는 “한 번도 원망 안 했어요”라며 말을 건넸다. 반가움 마음과 더불어 지난 시간이 머릿속에 스쳐 간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동안 통곡했다. 동생들을 찾기 위해 직접 실종 신고를 접수한 큰언니 희재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봤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58년 전 두 동생과 헤어진 장희재씨(오른쪽)가 동생 장희란(왼쪽)씨를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65년 3월 가족과 떨어진 희란씨와 경인씨는 31일 동작경찰서 2층 회의실에서 ‘4남매 상봉식’을 가졌다. 각자 8세, 6세였던 이들은 어머니와 외출해 전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한순간에 가족을 잃었다. 막내 경인씨는 “엄마 손을 놓쳤던 거 같은데, 자고 깨어보니까 엄마가 없었다”며 “전차를 내리면서 손을 놓치든지 했던 상황이었다”고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동작구 노량진 대합실에서 발견된 장씨 자매는 부모님을 찾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아동보호소로 옮겨졌다. 기대와 달리 오랜 시간 가족을 찾지 못하며 다른 시설로 옮겨진 이들은 만 18세가 되자 보호시설에도 더는 머물 수 없게 됐다. 세상에 내던져진 이들은 독학으로 학교 공부를 해서 진학하는가 하면, 등록금을 내지 못해 쫓겨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셋째 희란씨는 “생각도 가물가물하고 너무 힘들게 살았다”고 한숨 쉬었다.

동생을 찾아야겠단 생각으로 2021년 11월 동작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접수한 큰언니는 당시 “실종자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종자들이 보호시설에서 임의로 만들어준 이름과 생일을 사용한 탓에 소재파악에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 수사, 법무부 등을 통한 각종 조회와 서울시 소재 보육원에 자료 요청, 노숙인 쉼터 및 건강보험자료 확인 등을 진행했지만,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DNA를 채취하고 기다림의 나날을 보낸 희재씨는 1년 만에 “DNA가 동일한 사람을 발견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희재씨가 신고를 접수한 시기에 인천 연수경찰서에 신고를 넣은 막냇동생도 DNA를 채취해 아동권리보장원(보장원)에 보냈던 것이다. 보장원에 협조 요청을 넣은 뒤 DNA를 근거로 지속적으로 생활반응을 확인하던 경찰은 지난해 12월쯤 2차 DNA 채취 끝에 실종자의 소재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장씨 자매가 보호시설을 퇴소한 이후에도 현재까지 함께 연락하고 지낸 덕에 희란씨와 경인씨를 한번에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희란씨는 가족을 만난 뒤 “이렇게 가족을 찾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며 “엄마가 살아계셔서 ‘엄마’ 소리 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다”고 흐느꼈다. 막내 경인씨는 “제 뿌리를 찾고 싶고 누구 자식인지 알고 싶어서 30대부터는 계속 가족을 찾아달라고 민원을 넣었다”며 “국방부, 주민센터 등 신청은 많이 했지만, 경찰에서 찾아줄지 몰랐다”고 했다.

김영득 동작서 형사과장은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얼마나 서로 그리워하고 애가 탔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며 “오랜 걱정이 끝났으니 4남매 모두 평안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실종수사에 앞장선 홍재영 동작서 실종팀장 또한 “무엇보다 실종자들을 반드시 가족 품에 안겨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수사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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