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발끈했다. “기계학습시스템의 정확도를 99%로 끌어올리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궁극에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99.9999%라고.” 머스크의 핵심은 나머지 0.0001%가 기술이고 과학이며 최소한 ‘뚝딱’은 아니라는 거였다. 현재의 컴퓨터가 99% 이상의 정확도로 길 위의 강아지를 강아지로 보지만 아직도 가끔 화분으로 보는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거다.
자, 여기서 뭐가 보이나. 무인자동차의 가능성과 한계, 두 가지 전부다. 운전자가 없는 무인자동차가 드론처럼 상용화할 가능성이 이미 99%라는 게 가능성이다. 그러나 0.0001% 때문에 드론이 못 될 수도 있다는 게 한계다. 하츠와 머스크의 논쟁은 무인자동차의 마지막 퍼즐이 인공지각 소프트웨어에 달렸다는 논쟁을 요란하게 벌인 판이 됐다. 주행 중 알짱거리는 게 강아지냐 화분이냐를 제대로 판단하는 과업이 남았다는 거다.
2014년 구글이 운전대도 브레이크도 없는 ‘기형의 철덩어리’로 세계를 긴장시켰다. 자율주행자동차라 불리는 거였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메시지는 강력했다. 미래의 어느 날에 이 기형이 세상을 장악하리라는 것. 불과 3년 후 메시지는 현실이 되는 중이다. 무인자동차는 업종을 망라해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기계공학과 교수인 호드 립슨, 혁신기술의 영향력을 글로 쓰는 작가 멜바 컬만. 두 저자가 무인자동차를 축으로 세상을 돌렸다. 이미 시그널이 된 변화는 물론 10년 안에 ‘자율주행’이 도로를 점령하면서 재편할 산업질서까지 세심하게 더듬었다.
방점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란 데 찍었다. 무인자동차라는 게 골라 탈 수 있는 모델이 아니란 거다. 대세고 주류니까. 10년 뒤에도 클래식카는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드라이버의 고고한 취미생활일 뿐 무인자동차는 이미 ‘넥스트 모바일’이 된 이후라고. 그러니 준비하라고. 기회만인가. 아니다. 위험도 따른다. ‘혁명’이 그렇지 않나.
지구 위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10억대. 이들 차량이 사고를 일으켜 사망하는 사람은 120만명.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해마다 꼬박꼬박 10개씩 떨어지면 이 정도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원자폭탄과 다른 점이라면 의도성이 빠졌다는 거다. 음주·마약·졸음·한눈팔기 등 말도 안 되는 운전자의 실수가 벌인 일이니까. 딱 이 지점에 선다면 해결책은 분명해 보인다. 술 못 마시는 운전자, 졸지 않는 운전자, 한눈팔지 않는 운전자. 바로 로봇이다. 운전석에 앉히던지 차에 심어놓던지. 다만 시기·비용·기술적으로 먼저 나선 것이 뒤엣것일 뿐.
그렇다면 로봇을 심은 차에는 사고가 없나. 그렇진 않다. 기계에는 기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오작동이란 거다. 아니라면 해킹에 의한 프로그램 교란도 있을 수 있겠지. 실제로 2016년까지 개발 3년차인 구글의 무인자동차는 총 18회의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그중 17건은 인간운전자가 몰던 다른 차가 원인이었다. 그런데 1건, 버스와 난 사고는 좀 심각했다. 소프트웨어 오류였다. 무인자동차는 스스로 전진하면 버스가 멈추겠지 예상했는데 현실은 달랐던 거다.
‘운전을 자동화하다.’ 이 근거는 단순하다. 운전이란 게 반복적·즉각적 행위라는 거다. 그런데 99%가 반복적인 동작의 연속이더라도 1%의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면? 이것이 ‘코너 케이스’다. 머스크가 우려하던 그것. 로봇을 아무리 신뢰해도 위험에 대처하는 인공적인 본능이 막판에 작동하지 못한다면 배신당하는 일만 남은 거라고.
▲“세그웨이처럼 사라지진 않겠지”
그럼에도 무인자동차를 향한 저자들의 눈빛은 반짝거린다. 무엇보다 1%, 더 후하게 0.0001%의 로봇 본능에 대해서 낙관한다. 어차피 해결할 기술이란 거다. 약간의 보완책만 더한다면 ‘자율주행혁명’은 완성된다고. 다만 한 점 그늘은 ‘세그웨이’ 신드롬이다. 바퀴가 2개 달린 소형 이동수단. 언론은 물론 스티브 잡스까지 ‘PC만큼 거대한 발명품’이라 찬사를 보냈던 그 세그웨이는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제로원칙 때문이다. 생산비용을 ‘0’으로 수렴시키는 것. 증기기관이 그랬고 컴퓨터가 그랬다. 높은 비용장벽을 허물고 산업구조 전체를 뒤집어버렸다. 그런데 세그웨이는 제로원칙을 극복하지 못한 거다.
법·윤리도 바뀐다. 자동차보험만 보자. 만에 하나 0.0001%의 오류로 접촉사고가 난다면 책임공방은 ‘차 대 차’, 다시 말해 ‘로봇 대 로봇’으로, 더 구체적으로 차량의 생산자 혹은 판매자에게로 넘어갈 거란 얘기다.
▲판타지를 리얼로 바꾸는 건
그 옛날 연금술사가 진흙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밤낮으로 끓이고 뭉치고 했던 수많은 실험. 저자들은 무인자동차의 개발을 연금술사가 한때 쥐었다고 자신했던 생명의 묘약에까지 비유한다. 연금술사의 자리를 이제 로봇 공학자에게 넘겨준 것뿐이라고. 공학자가 하는 일도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니까.
따지고 보면 판타지를 리얼로 바꾸는 일이다. 기술은 완성단계지만 주변환경이 이 중대한 사안을 여전히 판타지에 머물게 한다는 게 저자들의 불만이다. 그런데 과연 그 시간에 이르면 해피엔딩이 될 건가. 어쨌든 결과와는 무관하게 양날 모두를 꼼꼼하게 갈아든 검은 책의 미덕이다. 무인자동차로 인해 ‘딱지’를 못 끊는 지자체의 세수가 감소할 것까지 애써 살피지 않았나. 토를 달 여지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