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무관심속 교실에 뿌리내린 불법도박[기자수첩]

`불법 도박` 고교생 총책이 전한 학교 도박 실태
자제력 부족한 시기, 학업 포기 상황도
제도 개선과 함께 주변 어른의 관심이 중독 막아
  • 등록 2024-10-13 오후 3:24:58

    수정 2024-10-13 오후 7:20:49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도박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은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성인들을 향한 경고였다. 하지만 이제 그 우려의 시선을 학교, 교실 안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교실에 스며든 불법 도박이 청소년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이데일리 취재진이 청소년 도박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접촉한 ‘고교생 총책’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남학생들 중 절반은 도박을 해봤을 것이고 또 그 중 절반은 심각한 수준으로 도박을 즐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 십만원은 기본, 수 백만원까지 도박에 넣는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이 총책은 전했다.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는 “우리의 중요 고객”이라며 청소년들에게 손을 뻗고 있다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말하기도 했다.

마치 다단계처럼 청소년 총책들이 도박으로 번 돈을 자랑하며 다른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이 다시 다른 학생들을 유혹하는 악순환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2024년 교실의 현주소인 셈이다. 우리가 청소년 문화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이 ‘불법 도박’이라는 독이 교실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청소년 도박이 성인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자제력이 부족한 시기인데다 앞으로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이다. 실제 우리가 만난 학생 중 일부는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다 도박에 빠져 학업을 포기해버린 사례가 상당수였다. 한 학생은 “도박에 빠져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불법 도박을 뿌리 뽑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아직도 성행하고 있는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처럼 존재를 알아차리고 차단하면 인터넷 주소만 살짝 바꿔 다시 운영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서다. 우리 취재에 응한 총책 역시 이러한 사각지대를 믿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듯 했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법 사이트나 계좌 등에 대한 조기 차단 제도 및 기술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청소년을 곁에 두고 있는 부모님과 선생님 등 어른들의 관심이다. 자녀 혹은 학생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 관심을 갖고 나누는 대화가 도박의 수렁에서 벗어날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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