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호 ‘세월 1’(사진=슈페리어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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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차피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토록 허망하게 부서져 비처럼 흘러내리나. 마치 별인 양 찬란한 빛을 뿌리다가 어느새 스러져 가는 게 시간이고 세월이란 것처럼.
작가 김민호(47)는 목탄을 도구로 그리고 또 지운다. 재현할 대상을 충실하게 옮겨냈다가 서서히 없애가는 건데. 바로 그것이 ‘목탄’이어야 하는 이유란다. 잘 그리기보다 잘 지워내기 위해서. 작업과정에서 그 독특한 지점이 만들어진다. 시점이 달리하면서 바라본 같은 대상의 다른 모습을 겹쳐내는 식. 여기에도 까닭이 있단다. 대상을 인식하는 시각은 “찰나가 아니라 ‘의식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 믿어서”란다.
결국 작품은 그 시각을 겹겹이 쌓고 또 털어버린 정수인 거다. 덕분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처럼 흐릿한 이미지는 목적이면서 방식이 됐다. 대여섯 번 반복한 그리기와 지우기로 실루엣뿐인 대상을 남긴다는데. ‘세월 1’(2015)조차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지우는 데 구별이 없는 게 특징이랄까. 누구도 형체를 본 적 없는 시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빤히 보이는 도심 아파트라든가 그 언저리 풍경까지도 작가의 목탄은 산산이 부숴버린다.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김지원·유근택·이지원·장재민과 여는 기획전 ‘수직의 수면’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목탄. 194×130㎝. 작가 소장. 슈페리어갤러리 제공.
| 김민호 ‘캔버스가 있는 공간 9’(2021), 종이에 수채, 72.7×90.9㎝(사진=슈페리어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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