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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 평가는 노·사가 참여해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함께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해 근로자의 사망·부상·질병을 예방하는 제도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제도로 주목받았다. 작년말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영국·독일 등 산업안전 선진국처럼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산업안전 정책·제도 전반을 정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위험성 평가가 주목받은 이유는 규제를 나열하고 못 지키면 처벌하는 방식이 산재 감축에 한계를 보였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이 제도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특히 노동계는 정부가 위험성 평가를 핵심으로 내세우는 제도 개편이 사업주의 산재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사회기술시스템설계학과 교수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위험성 평가의 기원과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전 교수는 “산업현장에서 다양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시적 규제방식에 한계가 있고, 기업체가 자율적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의 목표 기반 규제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험성 평가 안착을 위한 한국의 장기적인 숙제로 기업의 갑질 문화에서 근로자들이 어떻게 심리적 안전을 느낄 수 있게 만들 것인지, 과잉경쟁사회에서 안전을 위한 업계 실무단의 협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한국에서 갈등 구도가 심한 노조와 기업 간의 신뢰를 구축할 방안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위험성 평가 제도가 작은 사업장에서도 정상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제도를 이행하기가 까다롭고 복잡하다면 작은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가 위험성 평가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벤 팀 독일 사회보험조합 중앙예방국장은 “독일은 사업장에서의 자기규울 방식의 위험성평가 제도를 도입해 안전과 보건을 강화했고, 이런 제도는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의 협력과 책임 공유를 중요시 한다”며 “다만 독일에서도 소규모 기업에서 위험성 평가 이행률이 50% 미만으로 낮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특히 위험성 평가의 일부 항목인 문서화 의무 등은 중소기업이 이행하기에는 까다로운 의무”라며 “80%라도 하는 것이 100%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관점으로 공식적인 문서화 요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에릭 홀나겔 스웨덴 린셰핑대 교수는 “위험성 평가를 위해 너무 단순한 모델이나 방법을 사용하면 위험이 누락되거나 산정된 수치가 부정확할 위험이 있다”며 “위험의 산정과 검증은 철저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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