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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넘게 제자리인 장애인 이동권… "대선 후보들 응답할 차례"
- [이데일리 권효중 이수빈 기자]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출근길 시위’가 대선 정국에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출근길 불편’에 시달리는 비장애인들의 불만만 키우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이동권 보장을 누릴 수 있게 해달란 요구가 공약(空約)뿐인 정치권과 복지부동 정부부처에 번번히 부딪히면서, 최근엔 의도치 않게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는 형국이다.17일 혜화역 안에 붙어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선전물. 선전물 위에 시위를 반대하는 내용의 낙서가 적혀 있다. (사진=이수빈 기자)◇ 20년 넘었는데 갈 길 먼 ‘장애인 이동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작년 말부터 출근길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 시위는 여의도역과 공덕역 등 5호선, 혜화역과 한성대입구역 등 4호선을 비롯한 서울 시내 전철에서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하고, 구호 등을 외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비장애인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서울교통공사는 활동가들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차단하고 형사고발과 민사소송을 걸기도 했다.이들의 이동권 투쟁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던 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 사망한 사고가 계기였다. 이후 이들은 모든 지하철역 내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장애인 콜택시 등 다양한 이동권 보장 수단을 요구해왔고, 2005년에는 교통약자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아직 불완전하다. 서울시의 지하철 역사 283곳 중 22곳(7.8%)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고, 2025년까지 ‘도입률 100%’가 목표인 서울시의 저상버스 도입률 역시 현재 66%에 그쳐 있다. 그나마도 교통편의가 상대적으로 좋은 서울이 이 수준으로, 지방은 더욱 열악하다. 장애인 할동가 유진우씨는 “전라북도 군산 출신인데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다 군산만 가도 저상버스가 거의 없다”며 “두 시간에 한 대가 올까말까한 저상버스를 기다리느니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게 나을 정도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유씨는 “서울 내 역사에서도 리프트를 이용하면 ‘구경거리’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며 “설치된 엘리베이터들은 비장애인들보다 빨리 이용할 수 없어 우리에겐 이동을 위한 ‘선택권’ 자체가 현저히 작다”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구성원들이 지난 14일 서울시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탑승해 광화문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기획재정부와 대선후보가 약속하고 응답할 차례” 전장연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비로 책임져 이를 위한 보조금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과 장애인 탈시설 예산 증액 등을 요구 중이다.현재 주요 대선후보들은 모두 장애인 이동권 관련 공약을 내놓은 상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장애인에 대한 국가책임제를 약속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이동권을 위해 저상버스 확충과 장애인 콜택시 확대 등을 공약했다. 하지만 공약 현실화를 위해선 기재부의 예산 편성 뒷받침 약속까지 확실히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장연 측 주장이다.한명희 전장연 활동가는 “시위를 지속하면서 기재부와 대선 후보들에게 면담도 요청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의 불만도 이해하고, 시위 현장에서 위협도 받고 있지만 기재부든, 대선후보든 응답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정치권과 정부의 ‘확약’ 없는 사이 갈등만 고조되고 있다. 지난 15일 전장연은 디도스 공격으로 홈페이지가 다운됐고, 사무실에 찾아와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출근길 불편을 겪는 이들이 과격한 방식으로 전장연을 공격하고 있다.“전철 말고 국회로, 청와대로 가서 시위하라”는 요구도 많다. 그러나 전장연은 ‘전철’이라는 일상 속 공간의 의미를 강조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국회, 청와대, 세종청사까지 모두 방문해왔고, 그럼에도 정부는 20년 넘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여전히 장애인들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도 목숨을 걸고 이동하는데 누군가는 책임지고, 답을 해줘야 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박 대표는 “비장애인은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시민들 역시 알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 자막으로만 볼 수 있는 '위대한 수업'… "더빙 접근권 보장해야"
-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연을 TV를 통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EBS의 교양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이 이달부터 더빙을 제공하지 않고 ‘자막’만을 제공해 ‘접근성 침해’라는 논란에 부딪혔다. 모두에게 지성을 전달해준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달리 자막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이해하기 어려운 고령층 등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방영된 EBS ‘위대한 수업’ 브라이언 슈미트 편, 자막이 제공되고 있다. (사진=EBS ‘위대한 수업’ 갈무리)EBS는 지난해 8월부터 폴 크루그먼, 유발 하라리, 주디스 버틀러 등 세계적인 석학이 직접 강연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인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를 방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지원을 통해 제작진이 직접 석학들을 섭외하고 질 높은 강연을 제공해왔던 만큼 “수신료의 가치가 크다”는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아왔다. EBS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6개 언어로도 제공된다. ‘위대한 수업’은 본인의 모국어로 말하는 강연자의 목소리에, 한국어로 말하는 성우 더빙을 입혀 영상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위대한 수업’ 제작진 측은 “더빙 대신 원어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다”며 이달 방송부터 더빙 대신 자막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1일 방영된 ‘마이클 샌델’ 편부터는 더빙 대신 자막이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더빙 대신 자막만이 제공되는 건 일부 시청자들의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 지난 13일 자신을 시각장애인이라고 소개한 한 시청자는 ‘위대한 수업’에 더빙 서비스를 요청하며 “자막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더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일부 시청자들의 민원만 수용하지 말고 더빙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자막이 필요하다는 다른 시청자들의 요청도 뒤따랐다. 이들은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노인이라서 자막을 읽기 힘들어하는 어머니와도 방송을 보고 싶다’. ‘모두에게 지식이 전달돼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을 포함, 자막 접근이 어려운 이들을 배제하지 말라’고 했다. EBS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시청자들의 의견을 인지했으며, 다시 더빙을 제공할지의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자막을 읽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더빙’ 콘텐츠가 부족한 건 EBS만의 문제는 아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즈니 플러스는 콘텐츠 더빙을 제공하고, 넷플릭스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 읽는 ‘음성 변환’(TTS) 서비스와 오디오 화면 해설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 콘텐츠에는 지원되지 않는 만큼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텐츠 더빙을 맡고 있는 성우들은 시각장애인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보 접근권을 위해 더빙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최재호 한국성우협회 사무총장은 “더빙은 시각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자막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노령층, 미취학 아동 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권리이고 이들을 모두 합하면 전 국민의 4분의 1에 달할 만큼 보편적인 문제”라며 “정보접근권이라는 기본권 차원에서 더빙의 필요성이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