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지금은 전쟁 중

임규태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수석고문
  • 등록 2019-06-12 오전 5:00:00

    수정 2019-06-12 오전 5:00:00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그날 이후 냉전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은 전면적인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대신 베트남 전쟁으로 대변되는 소모적인 대리전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인류공멸의 핵전쟁을 우려한 미국과 소련은 무력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1970년대 들어서자 미국은 핑퐁 외교로 중국을 키워 소련을 견제한다. 소련은 이란에 혁명을 일으켜 미국의 중동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1980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탈레반을 지원하여 소련을 빠져나올 수 없는 전비의 늪에 빠뜨린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경제가 붕괴된 소련은 1991년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의해 해체된다.

소련은 해체 되었지만 냉전은 여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대한민국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빠뜨린 뒤 러시아를 강타한다. 1999년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냉전은 완전히 종식된다. 미국은 소련과 무력으로 싸우지 않고 50년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0년대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변경한다. 미국은 자신의 경제적 파트너인 중국과 무역전쟁을 개시한다. 현재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무역전쟁은 냉전시대에 소련과 벌인 비전투적 전쟁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대한민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 교역 1위, 2위 국가가 중국과 미국이다. 한국은 미국의 원천기술로 경제 부흥을 이뤘고, 중국은 한국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으니 한미중 삼국은 기술적으로도 뒤엉켜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최전방이니 서로 자기편에 서라고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역 전쟁은 본질적으로 기업을 앞세운 경제 전쟁이다. 각국의 기업들은 치열한 경제적 전투 속에서 자신의 생존과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해 고군 분투중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서 위탁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비즈니스 협력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 내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보안 문제를 감수하고 대만과 중국 파운드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이 미국에 설립한 파운드리 덕분에 미국 기업들은 보안 유출 걱정 없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AMD가 그래픽 프로세서 분야에서 화웨이와 관계를 정리하고 삼성과 파트너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사실 삼성의 테슬라 반도체 위탁 생산은 삼성에도 매우 의미가 큰 전략적 결정이었다. 생명과 연관된 제품은 만들지 말라고 했던 선대의 유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안보적 관점에서 미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삼성 오스틴 공장은 미국이 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제공했다. 삼성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세운 전략은 무역전쟁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을 미국의 안보 파트너로 격상시킨 것이다. 한편 중국 입장에서 삼성의 이탈은 뼈아프지만 돌이킬 수 없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같은 한국에 대한 강경 보복 조치에 신중을 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쟁은 피해야한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신속히 마무리하고 실리를 취해야한다. 그동안 북핵 문제에서 뒷전으로 밀려있던 아베가 미중 무역전쟁을 이용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청와대가 트럼프와 시진핑 방한 문제로 혼선을 빚는 사이, 트럼프는 지난달 3일간 일본을 방문했고 이달 말 오사카 G20 참석차 다시 일본을 찾는다.

그런데 무역전쟁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LG유플러스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를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시진핑 방한을 놓고 하루가 다르게 다른 소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런 정부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내부 조율이 안 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정부는 하루 속히 내부 혼란을 정리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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