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마치 화성 걷는듯"…잿빛도시 뉴욕 초래한 '기후 재난'

잿빛 연기 덮인 뉴욕 일대 둘러보니
"마치 화성 걷는듯" "담배 냄새 난다"
뉴욕시 대기질지수 최악 '위험 수위'
이상기후發 잦은 산불, 세계의 걱정
  • 등록 2023-06-08 오전 10:01:02

    수정 2023-06-08 오후 10:05:40

[뉴욕·뉴저지=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뉴저지주 북부 버겐카운티의 한 공립 초등학교는 7일(현지시간) 예정했던 3학년 현장학습(field trip)을 취소했다. 뉴욕주 북부의 한 운동장에서 할 예정이었던 5학년 밴드·합창단 학습도 미루기로 했다. 모든 가족이 함께하는 ‘패밀리 나이트’(Family Night) 행사 역시 오는 15일로 일단 연기했다.

이 학교가 갑자기 모든 야외 일정을 취소·연기한 것은 미국을 덮친 최악의 대기질 탓이다. 캐나다 동부 퀘벡주를 중심으로 산불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확산하면서, 공기 좋기로 유명한 미국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 초등학교 교장인 게일 랜더씨는 “마스크 여유분이 없으니 아이들을 마스크와 함께 학교에 보내 달라”며 “대기질이 안전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당분간 점심, 휴식, 체육 시간 모두 실내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버겐카운티 일대를 둘러보니, 조깅을 하는 주민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 줄지어 달리기를 즐기는 것과는 달랐다. 하늘은 뿌옇고 어두침침해서, 영화에서 보던 화성을 걷는 듯했다.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타는 냄새는 계속 났다. 식료품을 사러 잠시 외출했다는 아놀드씨는 “(팬데믹 이후 안 썼던) 마스크를 다시 쓰게 됐다(Back to masks)”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잿빛 연기에 뒤덮여 있다. (사진=AFP 제공)


잿빛 연기 덮인 뉴욕 스카이라인

비슷한 시각 뉴욕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뿌연 연기에 뒤덮여 있었다. 건물 자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뉴저지주에서 뉴욕시 쪽으로 진입하려고 고속도로를 타자, 대낮임에도 모든 차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곳을 달리고 있다는 오싹함이 들 정도였다. 평소 인파로 붐비고 활기가 넘치던 맨해튼은 돌연 우울한 잿빛 도시로 변한 것 같았다. 뉴욕시 공립학교들 역시 각 가정에 “모든 야외 활동을 제한할 것”이라는 공지를 했다고 한다.

뉴욕 일대의 대기질이 세계 최악 수준으로 나빠지면서 일상이 멈추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처럼 집 밖을 다니는 인파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이는 지구 온도가 오르고 습도가 감소하는 탓에 산불이 잦아지는 ‘기후 재난’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기질 분석업체 아이큐에어(IQAIR)에 따르면 이날 오후 뉴욕시의 대기질지수(AQI)는 342까지 치솟았다. AQI가 300을 넘으면 ‘매우 유해’(very unhealthy·201~300) 수위를 넘어 ‘위험’(hazardous·301+) 수위로 분류한다. 300 이상이면 건강한 성인의 경우 대부분 곧 회복할 수 있지만, 천식·심혈관 질환 등이 있는 환자나 노인, 임산부 등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00이 넘는 AQI는 스모그로 악명이 높은 인도 뉴델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레벨이다. 전날 밤 맨해튼의 AQI가 218까지 오르자 뉴욕타임스(NYT)는 “뉴델리와 자카르타에서는 흔하지만 뉴욕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는데, 뉴욕시는 하루도 안 돼 이들을 추월했다. 뉴욕시 자체 기준 AQI는 1999년 첫 측정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뉴욕주 중부 시러큐스, 빙엄튼 등의 AQI는 400을 돌파하기도 했다. 미국 기상청(NWS)의 마이크 하디만 기상학자는 “뉴욕이 화성인 것처럼 보인다”며 “도시에서 ‘시가’(Cigars·담배의 일종)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저지주 위호큰에서 바라본 뉴욕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잿빛 연기에 뒤덮여 있다. (사진=AFP 제공)


“이상기후發 산불, 세계의 걱정”

뉴저지주에서 국제공항이 위치한 뉴어크 인근 등의 지역들도 300에 가까운 AQI가 나왔다. 전날 밤 남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출장을 마치고 뉴어크 공항에 내렸는데 누렇게 변해버린 하늘과 뭔가 타는듯한 매캐한 냄새로 당황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캐나다 산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댈러스의 쾌청한 하늘과는 달랐다.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등 동부 주요 도시들 역시 ‘집콕 모드’에 들어섰다. 로이터통신은 “이들 외에 버몬트주, 오하이오주 등 15개주에서 미세먼지가 위험 수위로 올라갔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환경보호청(EPA)은 1억명 이상 미국 주민에게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고 했다.

문제는 캐나다 당국이 여전히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 비상계획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414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틀 전 400여곳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프랑수아 르고 캐나다 퀘벡주 총리는 “지금 당장 인력으로는 40여곳만 동시에 진압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산불로 소실된 캐나다 국토는 약 380만헥타르(약 3만8000㎢)에 이른다. 한국 면적(약 10만㎢)의 3분의1을 넘는 규모다. 이런 탓에 이날 오전 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AQI는 486까지 폭등했다. 대다수 캐나다 도시들의 수준이 이랬다.

이번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는 전형적인 이상기후에 따른 재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감소하면서 산림을 건조하게 만들어 산불이 잦아지는 현상은 캐나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CNBC는 지난해 9월 스탠퍼드대 연구 결과를 인용해 10년 전에는 거의 볼 수 없던 산불 연기에 따른 오염을 최근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정기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서 한 주민이 마스크와 선글래스를 쓴 채 걷고 있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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